선악과의 교훈을 무시한 결과
창3:1-7
1,죄의 본성
2,죄는 어떻게
3,죄의 결과
오늘의 말씀은 사람들이 잘 아는 것 같은 말씀이다.
그러면서도 오늘의 말씀은 아주 잘 모르는 말씀이기도 하다.
또 오늘의 말씀은 들어서 그렇게 기분이 좋은 말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잘 새겨들으면 아주 수지가 맡는 말이 될 수도 있다.
1,罪의 本性
무엇이 죄일까?
무엇을 죄라고 말하는가?
도적질, 강도질, 강간, 방화, 폭행, 전쟁,
그런데 여기 우리는 이런 같은 일을 행한 일이 없다.
그럼 무엇이 죄란 말인가?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죄의 정의는 독특한 의미를 가진다.
물론 세상의 그 많은 종교들이 가지는 죄의 저의와도 다르다.
세상 사람들은 말하기를 사람은 근본적으로 선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선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실상을 보면 선한 모습을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오늘 본문은 사람들이 선하지 않음을 알려 주는 아주 귀한 죄의 기원을 밝혀주고 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참으로 많은 교육을 받는다.
우리들의 자녀들은 말로다 표현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교육을 받으면서 살고 있다.
그런데도 세상은 온통 사기, 유기, 질병, 전쟁으로 시달리고 있다.
예전에 보다는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이 향상된 것 같으면서도 아니다.
왜? 그런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사람들이 선하지 못하기 때문인 증거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모두가 다 죄를 지은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음양의 법칙을 주장하고 싶어 한다.
우주에는 음양의 두 양면성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또 그렇게들 믿고 있음을 본다.
그래서 선악과도 음양의 법칙으로 늘 함께 있어왔던 것으로 이해를 하려고 한다.
허지만 우리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무책임한 말을 하지 않는다.
선이 있기에 악이 있고, 악이 있기에 선이 있다는 말도 아닌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창조는 온전히 선한 것들로의 충만 이었다.
그런데 마귀란 녀석이 죄를 가지고 사람 사회에 기어든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의 역사는 한 마디로 죄악과 싸움의 역사이다.
그럼 죄란 무엇인가?
하나님이 없는 것이 죄이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일, 하나님을 떠나는 일들이 다 죄이다.
내 생각대로 행동하고 사는 일, 내 기분대로 행동하는 일들이 다 죄이다.
창3: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하고 있다.
창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善惡果나무의 實果
하나님께서는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다.
또 이 나무는 말 그대로 선과 악을 구별하는 나무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존재가 못된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알고,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예내 지금이나 인간들을 향하여 원하시는 것은 선악을 구별하는 능력이 아니고
사람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고 살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사람은 사랑은 하려하지 않고 선악을 구별하기를 원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자신들이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창조자 하나님이 필요가 없는 대상으로 있음이 된다.
그것이 죄이다.
그래서 우리 사람들 모두가 다 죄인이다.
그런데도 오늘 우리들 주위의 사람들을 살펴보면 모두가 다 이렇게 말들을 한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도 알고, 또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그게 사실일까?
정말 자신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알 수 있을까?
그런데 그보다 더 큰 것은 하나님을 내게서 제외시키는 것 즉 그것이 바로 죄이다.
우리 사람들 모두는 다 죄인임을 인정을 해야 한다.
2,罪는 어떻게
창3: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죄가 인간에게 들어오게 된 것은 듣는 데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잘못된 것으로부터 듣는 것에서 시작이 되었다.
하나님의 은성이 아닌 피조물의 음성을 듣는데서 죄가 시작된 것이다.
오늘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보다는 사람의 말을 더 관심 있게 듣는다.
죄와 상관없이 즉 죄악 된 세상에서 승리하면서 살려면 하나님의 음성을 바로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려면 삶의 방법을 개선해야 한다.
에덴동산의 하와는 사탄의 소리에 귀를 기우렸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은 온갖 소리로 가득 차 있음을 볼 수 있다.
성공할 수 있다는 많은 소리로
출세할 수 있다는 크고 많은 소리로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소리들로 가득 차 있다.
세상은 하나님의 소리가 아닌 잡소리로 가득 차 있다.
하와는 세상의 소리를 아주 귀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이 세상의 소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이상하게도 하나님의 말씀에 의심이 가게 된다.
창3:1 “...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이는 하나님의 음성도 소리도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나무를 말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오직 “한” 나무의 실과만 말씀하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너는 즐겨서는 안 된다고 하시지 않았다.
또 네가 하고 있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3,罪의 結果
창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그런데도 사탄은 결코 죽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오늘 날에도 여호와의 증인 같은 많은 이단들이 지옥은 없는 것처럼 사탄의 말을 한다.
구원파 신천지 같은 이단들도 죄를 깨달으면 그 후로는 죄가 없는 것 같이 가르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에 그런 지옥은 만들지도 않았다는 헛소리를 해댄다.
창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그럼 이 말의 참 뜻은 무엇인가?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될까봐 질투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님과 같이 될까봐 하나님께서 겁을 먹고 있는 것이다.
또 네가 먹는 날로부터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마귀는 지금도 똑같은 소리를 하고 다닌다.
젊은이들은 젊은이답게 능력 있는 자는 능력 있는 자답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그런데도 하와가 그 나무를 쳐다보았다.
보기가 좋았다.
보자마자 먹고 싶어졌다.
먹으면 뭔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막 왔다.
그 때 하와는 자기의 감정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
Feeling!
하와는 마음에 결심을 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의 결과를 무시하기로 결심을 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제쳐 두고 자기의 마음에 오는 느낌으로 행동하기로 했다.
그 때 아담은 어디에 있었으며 또 무엇을 했을까?
그 때 아담이 거기에 있었다는 주장과 따로 있었다는 주장이 있다.
왜냐하면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을 때 의논한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함께 있었다,
함께 없었다는 의론이 분분한 것이다.
결과를 미루어 보건대 순간적이나마 함께 있은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아담의 잘못이라면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하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랑하는 부부라면 악착같이 그리고 언제나 함께해야 한다.
그 후 하와는 먹다 남은 과일을 남편인 아담에게 건네주었다.
웬일일까?
창3:3절을 보면 둘이 함께 있었던 같은 감이 있다.
창3:4절을 둘이 함께 있지 않았던 감이 있다.
둘이 함께 있었다면 서러가 의논을 했을 것임을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하와와 뱁 둘만의 대화가 계속되는 것으로 보아 잠시나마 하와가 함께 있지 않았음을 본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때 아담의 실수가 있다.
아내가 과일을 건네 줄 때 아무런 생각 없이 받아 먹엇다는 사실이다.
사실은 사라들이 자기의 잘못이나 결점을 지적해 줄 때 기분 좋아해 하는 이가 거의 없다.
세상 사람만이 아니라 교회를 함께 다니는 형제들 중에도 잘못을 잘못으로 지적해 줌을 좋아하지 않는다.
모두가 다 아담의 후예라서 그런 것 같다.
이것이 오늘의 교회의 비극이다.
아담이 죄악을 죄악이라고 바르게 지적하지를 못했다.
잘못을 잘못으로 지적하지만 못한 것이 아니라 자신도 거기에 동참을 하고 말았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도든 사건을 잘 알고 있는 자들이다.
그 때 그 일로 일어난 일의 결과도 잘 알고 있는 자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도 여전이 그 때 하와처럼, 또 아담처럼 그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여러분들의 모습이 혹시 하와의 모습은 아닌가?
지금 여러분들의 모습이 혹시 아담의 모습은 아닌가?
혹시 남의 죄는 보는데 내 죄는 보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니가?
혹시 남의 죄는 지적을 해서 고발은 하면서도 내 죄에는 관용하지 않은가?
죄는 크고 작음이 있을 수가 없다.
세상 법정에는 몰라도 하나님 앞에는 다 똑같은 죄악임을 알아야 한다.
죄를 지적하면서 나를 바로 세우면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