挑戰받고 挑戰하고
행19:23-41(2012-05-29)
1,물질에 도전받고 도전하고
2,대인에 도전받고 도전하고
3,목표에 도전받고 도전하고
한 생명(生命)이 태동할 때는 엄청난 도전을 받게 된다.
지극히 미미(微微)한 미명의 풀 한 포기의 출발도 대단하다.
굳는 대지를 뚫고 땅을 가르고 고개를 내 미는 것을 볼 때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래세월 사람들이 밝고 또 밝고, 밟은 그 굳는 대지를 헤치고 고개를 내미는 것을 보면 참으로 신기하다.
나무에 새싹도 그 단단한 마른 나무 줄기를 뚫고 새싹을 내미는 것을 보면서 그 생명력이란 참으로 신기할 뿐이다.
건강 한 몸에 병균이 침입을 했을 때 항균(抗菌)작용도 대단하다.
한 생명의 소중함을 무엇으로 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영의 한 생명이 태어나고 또 한 교회가 탄생할 때 어찌 천지가 진동하지 않겠는가?
영국 교회가 Elizabeth 여왕의 보호 아래 있었을 때 보다는 Merry 여왕의 박해와 학정 아래 있었을 때 교회는 더 정상적인 성장의 길을 걸었다.
초대 교회가 그랬다.
로마의 모진 박해가 있었을 때 기독교는 건전하게 성장을 했었다.
또 박해가 심할 때 복음의 전파도 전 세계를 향하여 속도 있게 전파되었다.
그러던 것이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을 하고 난 후부터 교회는 타락의 길을 걸어 왔다.
그 타락의 결정체가 바로 Roman Catholic church이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핍박도 간섭도 받지 않게 되자 잠자는 교회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교회가 타락하기 시작하더니 그 타락한 교회가 면죄부를 장사하기에 이른다.
더 나아가서 성경에도 없는 하나님도 모르는 연옥을 만들어서 부를 취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 역사상 가장 위태했을 때는 교회가 박해를 받을 때가 아니라,
교회가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거나 보호를 받을 때였다.
반대로 교회가 가장 교회다웠을 때는
교회가 나라의 보호를 받을 때가 아니고 교회가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고 있을 때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될 때에 야기되는 많은 반대들과 이러한 반대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기에 승리 할 수박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 본문이 그 역사적인 실례를 잘 말해주고 있다.
1,物質에 挑戰받고 挑戰하고
23절에"그 때쯤 되어 이 도로 인하여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사도 바울이 열정을 다하여 복음을 전파하고 있을 때 에베소 시에 큰 소동이 일어났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에베소는 Diana 여신 즉 Artemis를 유별나게 숭배를 했다.(축복신)
에베소에 대 소동이 일어나고 있었던 그 때가 바로 Diana 신을 숭배하는 달 즉 5월이었다.
그래서 매년 5월이면 아시아에 있는 많은 우상 숭배 객들이 에베소에 몰려오곤 했다.
그 외지에서 몰려오는 사람들과 지방의 사람들을 합하면 대단한 수치이다.
그로 인하여 이 에베소엔 이 우상숭배를 위하여 은장색이 매우 성행을 했었다.
그것으로 인하여 벌어들이는 수입 또한 대단했다. (호신부처럼 몸에 차고 다녔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복음 전파 때문에 Artemis여신을 숭배하던 자들이 많이 감소하게 되었다.
Artemis여신을 섬기는 자들이 많이 감소했다는 말은 그마 만큼 수입이 줄어들었다는 말이다.
사도 바울의 복음사역의 결과는 에베소 사람들 즉 우상 숭배자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은장색 데메드리오가 그 대표적인 인물로 그는 은감실, 즉 아데미 여신상을 제조하는 자였다.
아데미 여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이 은감실을 집에 안치해 놓거나 호신부로 부적처럼 허리에 차고 다녔다.
사도들의 복음 전파의 일로 인하여 이 부적을 만드는 직공들을 많이 거느렸던 데메드리오의 생업에 큰 타격이 온 것이다.
우상을 섬겨야할 사람들이 복된 복음의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그리스도께로 돌아 옮으로 말미암아 우상판매업은 현저하게 그 수입이 줄어들게 되었던 것이다.
생업에 지장을 받게 된 자들이 복음 전파자들을 핍박하고 나선 것이다.
그래서 에베소 시민들은 교회를 향하여 반기를 들고 요즘 말로 말하면 데모를 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일은 옛 날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오늘 얼마든지 일어 날 수 있는 일들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예수를 생명을 걸고 바로만 믿는다면 오늘도 일어 날 수 있다.
술, 담배 매출 양이 줄어들 수 있다.
유흥가며 주점이 현격히 감소할 수 있다.
사이비 이단들의 단체들이 해체될 수가 있다.
그러나 현실은 줄어야할 것들이 증가하고 있다.
그 반대의 현상으로 십자가의 종탑이 점점 내려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분명히 어느 누구에게도 물질적인 손해를 입혀서는 아니 된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때문에,
그것이 말씀에 위배되는 것으로 인해서 어떤 손해가 발생한다면 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복음과 관계된 것이라면 교회는 하나님을 포기할 수 없는 것처럼 물러설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믿음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면 가능한 양보의 미덕을 쌓아야 마땅하다.
여러분들의 위대한 믿음의 삶 때문에 복음 역사가 예루살렘까지 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2,對人에 挑戰받고 挑戰하고
그리스도인의 대인 관계를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을 살아하듯 하라"(레19;18)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빌2;3)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롬12;10)
"너를 송사 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것 옷까지도 가지게 하며"(마5;40)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마5;41)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사랑하며.."마5;43,44)
"나 자신의 유익보다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10;33)
그리스도인은 상대의 기쁨의 대상이 되어야한다.
그런데 지금 바울과 그의 일행이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다.
우상을 만들어서 업으로 하는 사람들과의 대인 관계 때문이다.
저들에게 유익은커녕 오히려 생계가 위협을 당한다고 난리가 난 때문이다.
행19:25-27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최선을 다할 때에도 세상의 도리와 역행할 때가 참으로 많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사람들과의 관계가 서먹해지는 일들이 허다하다.
참으로 난처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럴 때 문제의 해답을 내 머리에서 찾지 말고 성경이 무어 라고 말하는가를 찾아야한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상대방에게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고 마음에도 없는 일에 동참하는 사례들이 있는 것을 본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술친구를 위하여 주색잡기에 빠질 수는 없으며,
친구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하여 횡령을 함께 할 수는 없으며,
상사의 비위를 맞춘다고 신앙의 진리를 역행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당시에 에베소에는 2 만 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극장이 있었다.
이 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극장에 모여들었다.
이때 바울은 어떻게 했는가?
타협? 포기? 아니다/.
타협할 수 없다.
포기할 수 없다.
극장에 소동을 일삼아 모인 수자도 많았지만
18-20절에서 우리가 살펴 본대로 예수 믿고 회개하고 돌아 온 사람들 또한 많았다.
중요한 것은 반대를 일삼는 저들의 입으로 이미 자신들의 패배를 실질적으로 시인을 하고 있다.
겨울이 아무리 매섭고 추원도 봄은 오게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라 할 수 있다.
25절에 "...여러분도 알거니와 .."
복음이 가져온 변화를 이미 저들은 알고 있었다.
거리의 깡패와 술 망난이가 온전한 사람이 된 것을 보고 알았다.
그러면 할 말이 없는 것인다.
26절엔 "...그대들도 보고들은 것이라..."
에베소엔 많은 회심(回心)자를 통하여 믿음의 간증을 들었다.
그리고 회심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거룩한 모습을 보았다.
그러면 할 말이 없는 것이다.
26절에 또
"..이 바울이 에베소 뿐 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 허다한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이미 복음의 역사는 에베소 이 작은 도시에 국한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역사적 사실임이 드러나고 있었다.
오늘에도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세계사의 내용이 무엇인가?
많이 왜곡을 해서 가르쳐 옵니다만 세계사에서 교회의 역사를 뺀다면 아무 것도 배울게 없다.
역사가 곧 교회이고, 교회가 곧 기독교의 역사가 곧 세계의 역사인 것이다.
그래서 말하는데, 믿음의 사람의 삶이 곧 역사이다.
그래서 Christian은 세계의 역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
전도자가 당하는 수난은 그가 참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훈장과 같은 것이다.
원대한 앞을 내다보시면서 힘찬 믿음의 행진을 할 수 있기를 축원한다.
3,目標에 挑戰받고 挑戰하고
다 그런 것은 아니나, 많은 경우 이유 없는 미움을 교회가 사회로부터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사돈 논 사면 배가 앞은 심리의 작용일 것이다.
교회가 또 믿음의 사람들이 세상으로부터 시기와 질시를 받는 일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누군가가 나를 향하여 도전을 해 오지 않음은 정상이 아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지향해야하는 높은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 목표를 바라보면서 날마다, 날마다 올라가야하는 것이다.
오늘 에베소에서 일언 난 이 난동의 사건은 인간의 영혼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들에 의하여 일어난 것이다.
진정 사회가 영혼의 귀중함과 인생의 의미를 바로만 알 수 있다면 결코 교회를 향하여 사회적인 문제는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여러 외곡 된 말에 선동된 백성들은 결국 바울의 전도를 막으려고 하였다.
허지만 그 중에 절반 이상은 자신들이 왜 모였는지를 모르고 따라서 모였던 것이다.
바울의 전도를 막으려 하였지만,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이 왜 모였는지를 모르고 모였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대에도 그랬었다.
예수님을 죽이라고 외친 많은 사람들도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였는지 전혀 알지 못했었다.
※ 예수님께 거라사 지방을 지날 때 귀신들린 자를 고쳐 준 일이 있었다.(마8;28-34)
그 때그 사람에게 들렸던 귀신이 그 근처에 있었던 되지 2,000 마리에게 들어갔었다.
그 일로 그 되지 2,000마리가 바닷물에 빠져 몰사하게 되었다.
그때 이를 지켜 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거기 있지 말고 떠나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영혼보다 그들에겐 되지 떼가 더 소중했기 때문이었다.
※ 오늘 날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타인을, 자신을,
사람 죽이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회에 오늘 천산교회가 있는 것이다.
참으로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많다.
어떻게 하면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알 수 있게 하느냐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저 세상 사람들이 영혼의 귀중함을 알게 할 수 있을까 이다.
※ 그래서 여러분은 지금보다 좀 더 잘살아야한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지금보다 좀 더 거룩하게 살아야한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지금보다 좀 더 진실해 지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 본문으로 돌아가자! 32절을 같이 읽자!
"사람들이 외쳐 혹은 이 말을 혹은 저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극장에 많은 사람들이 뭐나 있나 해서 모여들기는 들었는데 막상 와서 보니 자기들이 왜 왔는지조차도 알지 못하더라고 했다.
그 때 서기장이라는 사람이 일어나서 오늘의 형편을 잘 설명했다. 35-41절입니다.
이 사람들이 불법 집회를 한 것도 아니고 남의 물건을 도적질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음을 증명해 주었다.
서기장의 말은 너무나도 타당한 말이었다.
그의 정의로운 말 한마디에 모든 소요를 잠잠하게 했다.
아마 이런 것들이 시발점이 되어서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기에 이르지 않았나 하고 생각을 해 보았다.
그래서 말하는데 오늘의 기독교가 국교가 되면 아니된다.
교회는 나라의 보호를 받을 때가 좋은 것이 아니라 바르게 성장할 때가 좋은 때이다.
오늘의 교회들이 도전할 목표를 잃은 교회 같지 않은가?
오늘의 교회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방향을 잃은 것 같지 않은가?
십자가, 십자가 하면서도 내 몫의 십자가는 저 멀리 벗어 던진 것은 아닌가?
목표가 있어서 도전하는 교회는 데메드로오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목표가 있어서 도전하는 교회는 에베소의 동요나 사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어떤 경우에도 진리의 강물은 도도히 흘러만 가게 되어 있다.
마치 매서운 찬 서리의 겨울은 있어도, 봄은 오게 되고 꽃은 피게 되어 있는 것과 같다.
여러분들이 이 시대에 서기장이 되면 된다.
여러분들이 이 시대에 사도 바울이 되면 된다.
어쩌면 열매 맺은 나무가 사람들의 돌팔매를 당하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럴수록 여러분들은 믿음의 더 높은 목표를 향하여 도전을 햐야 한다.
믿음의 사람들의 진정한 목표는 예수님처럼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를 지기까지이다.
여러분들도 예수님처럼 그 도전의 정상에서"내가 다 이루었다"고 할 때까지 올라야 한다.
복음 때문에 돌팔매가 나라들거든 천국의 금 면류관으로 알고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열정적으로 땅 끝까지 전도를 위한 주의 일에 도전자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